얘야 네 몸엔 빨대를 꽂을 데가 많구나
By Kim Hyesoon
검은건반 흰건반이 마구 섞이는 저녁
장님이 해를 바라볼 때 같은 박명의 시간
시간으로부터 빠져나와 이륙을 감행해서
흰 수염의 피아노 수선소 굴뚝까지
얘야 이 우주에 아직 멈추지 않은 음악 같은 게 있다는 게 얼마나 좋으니
이륙하면서 잠깐 뇌리를 스치는 생각!
저 아래 사람들은 한평생 뭘 저리 열심히 만들다 가는 걸까?
별도 하나 공중에 띄우지 못하면서
밥이나 하고
야채나 씻고
동그란 바퀴나 만들면서
가수에게 편지나 쓰고
내 음악은
욕조만 한 우주를 만들어서
풍덩! 하는 것
그런 다음
어느 새의 투명한 유서처럼
떠오르는것
허공에 지은 새집은 누가 매일 그렇게 빨리 지워버리는지
비가 와도 젖지 않는데 비가 오는 나라
아빠가 와도 아빠가 없는데 아빠가 오는 나라
속속들이 빈틈없이 팽팽한 신경줄로 엮은
피아노들은 지독히 이빨이 아프지만
아픈 손으로 썼어요, 이 편지를
먼 훗날 같이 개봉해요, 끝나지 않을 이 편지를
사막에
3백 년 만에 비가 내리자
3백 년 동안 기다린 씨앗의 키가
하늘 끝까지 솟구쳐 오르고
이 한없이 슬픈 원경
비 맞는 사막을 동그란 망원경으로 동그랗게 모아 보듯이
피아노 한 대
그러나 박수 소리 찬란하게 후드득 멀어지는
시간의 장례를 알리는 침묵의 심벌즈는 닫히고
2백조 킬로미터 떨어진 글리세 581c 행성이
힘차게 주먹 쥔 중력의 손가락들을 모두 펼치는 시간
호수 바닥에 숨겨진 시체처럼 엎드렸다가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면서 일어서다가 온몸이 저며진
생선회처럼 채 친 무 튀긴 당면 위에 누워 귓바퀴에 매화꽃 두르고 숨 헐떡거리다가 소파에 고꾸라져
내팽개쳐진 옷처럼 가느다랗게 숨이나 쉬다가 밥이나 하고 야채나 씻고 두 발에 쇠사슬이 묶여 발을 끌며 피 흘리며
우적우적 씹은 것들을 게워놓고 떠날 시간은 돌아오기 마련 삼단 같은 머리를 기른 올챙이가 개구리의 꿈속으로 떠나야 할 시간은 돌아오기 마련
얘야 네 몸엔 빨대를 꽂을 데가 많구나
흰 수염은 계속 떠들기 마련
그러나 지금은 흰건반 검은건반 두드려서
서늘하게 풍덩! 피아노에 묶인 새들을 풀어줄 시간
Notes:
Read the English-language version, "Girl, Your Body Has So Many Holes for Straws."
Copyright Credit: Kim Hyesoon, "Girl, Your Body Has So Many Holes for Straws" from Phantom Pain Wings. Copyright © 2017 by Kim Hyesoon. Reprinted by permission of Moonji Publishing Co., Ltd..